- 청록집 (1946년 / 을유문화사 / 삼성출판박물관 제공)

 

 

[청록집의 간행과 청록파]

해방 후 조지훈은 박목월, 박두진과 함께 『청록집』을 펴냄으로써 '청록파'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. 세 사람은 비슷한 시기에 『문장』지를 통해 등단했다. 『청록집』이라는 명칭의 유래는 청록파 시들의 공통점이 대체로 자연과의 친화라는 점에 착안하여 박목월의 시 「청노루」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. 또한 그들의 스승격인 정지용의 시집 『백록담』을 의식하고 『청록집』이라 했다는 설도 있다.

 

 

- 청록집 출판 기념회에서 (1946년 / 박두진문학관 제공). 앞줄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조지훈이다.

 

 

 


- 청록파 3인 (1954년) 왼쪽부터 조지훈, 박목월, 박두진이다.

 

 

[청록파 3인: 조지훈, 박두진, 박목월]

청록파 시인 셋이 걸어 갈 때면 항상 지훈이 가운데서 걷고 두진과 목월이 양 옆에서 걷곤 했는데, 지훈은 성큼성큼 걸어 앞섰으며, 두진은 매번 뒤쳐졌고 그 둘 사이에는 목월이 있었다고 한다. 또한 걸을 때 모습을 보면, 지훈은 항상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고 걷고, 두진은 직선적인 자세로 정면을 응시한 채 걸었으며, 목월은 고개를 숙이고 땅을 쳐다보며 걸었다고 한다. 

이렇듯 걷는 모습이 다르듯이 이들의 성격이나 시 세계또한 달랐다. 지훈은 고전미와 선미(禪味)를 드러냈고, 두진은 자연에 대한 친화와 사랑을 그리스도교적 신앙을 바탕으로 읊었으며, 목월은 향토적 서정으로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의 의식을 민요풍으로 노래했다.

 

 


- 경주에서 박목월을 처음 만났을 때 (1942년) 왼쪽부터 조지훈, 박목월이다.

 

 

[조지훈 : 전통에 대한 향수]

조지훈은 청록파 중에서 가장 전통적 감수성이 돋보이는 시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. 「봉황수」, 「고풍의상」, 「승무」를 포함한 열두 편의 시를 『청록집』에 발표했는데, 이 작품들은 전통에 대한 향수를 회고적으로 그려 놓은 것들이었다.

 

「봉황수」는 황폐해진 옛 궁궐을 지켜보면서 지난 역사를 회고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고, 「고풍의상」은 한국 여인의 예스러운 의상이 지닌 우아함과 곡선의 아름다움을 부각시키며 사라져 가는 우리 전통미에 대한 아쉬움을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다.

 

조지훈의 시 중에서 가장 많이 사랑받는 「승무」도 한국의 전통미를 형상화하고 있다. 

“얇은 사(紗) 하이얀 고깔은 /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”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절에서 추는 춤을 묘사한 것으로 “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, /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버선이여”와 같이 한국적인 곡선을 아름답게 표현했다.

 

[박목월 : 향토적이고 자연적인 정서]

박목월은 청록파의 이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시인이라고 평가받는다. 그는 자연의 풍경을 묘사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전통적인 삶의 의식을 표현한 시인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. 그런 맥락에서 민요풍의 시를 즐겨 지었다고도 전해진다.

 

그의 대표작 「나그네」에는 이러한 특징들이 아주 잘 나타나 있는데, 

“강나루 건너서 / 밀밭길을 // 구름에 달 가듯이 / 가는 나그네. // 길은 외줄기 / 남도 삼백 리 // 술 익는 마을마다 / 타는 저녁놀 // 구름에 달 가듯이 / 가는 나그네.” 

 

시를 읽어 보면 바로 알겠지만 이 작품은 김소월의 시처럼 우리 민요에 사용하는 율격인 3음보 율격으로 되어 있다. 시의 내용도 외로운 나그네의 여정을 통해서 삶에 달관한 자세를 보여 주고 있는데 이는 전통적인 정서에 닿아 있다고 말할 수 있다.

 

[박두진 : 구원과 치유]

박두진 시인은 다른 두 시인과 마찬가지로 우리말의 특징을 잘 살려서 자연을 노래했다. 독특한 점은 그가 그려 낸 자연에는 기독교적인 세계관이 깔려 있었다는 것이다. 박두진은 현실의 모순과 갈등을 죄악이라고 보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연을 통한 정화와 치유가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.